[허용선의‘지구촌 건축기행’] 출처 : 신동아 2009.05.01 통권 596호(p38~42)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가 태동한 세계 종교의 중심지
사진/글 ·허용선 여행 칼럼니스트 yshur77@hanmail.net
 

유엔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예루살렘 시가지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은 3000년 넘는 긴 역사를 가진 곳이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성지(聖地)가 한데 모여 있다. 사연 많은 종교적 건축물이 도시 전체에 즐비하다. 유네스코는 “인류가 영구히 보존해야 할 뜻 깊은 도시”라며 예루살렘 전체를 세계 문화유산으로 이미 지정했다.

유대인이 존경하는 다윗왕은 기원전1000년경에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이곳을‘다윗의 도성’이라고 불렀다. 원래 4만2900㎡(1만3000평) 정도의 작은 성읍이던 것을 그의 아들인 솔로몬왕 시절 북쪽으로는 예루살렘 대성전이 있던 곳까지, 서쪽으로는 시온산 언덕까지 확장했고 주택구역을 조성해 성의 면모를 일신했다고 한다.

예루살렘은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어 이곳을 차지하려는 많은 나라의 침략을 받아왔다. 50회가 넘는 외침이 있었고 이집트, 바빌로니아, 로마, 페르시아, 오스만투르크, 십자군 같은 세력의 지배가 이어졌다. 이스라엘의 수도이자 ‘평화의 도시’라는 뜻을 갖고 있는 예루살렘은 현재에도 이스라엘의 정치, 행정, 종교 중심지로 자리 잡고 있다. 감람산 언덕에 있는 유엔전망대에 올라가 보면 예루살렘은 과거와 현재가 잘 조화된 불가사의한 도시로 느껴진다. 견고해 보이는 예루살렘 성벽 뒤로는 유서 깊은 기원전의 건물에서부터 최근 지은 고층건물까지 배치돼 있어 신비함을 더한다.

중앙에 황금빛 찬란한 돔이 있어 예루살렘 어느 곳에서나 눈에 띄는 오마르 이슬람교 사원은 흔히‘바위의 돔(Dome of Rock)’이라 불린다. 내부에는 길이 17.7m, 폭 15.5m나 되는 거대한 바윗돌이 있다. 마호메트가 이 바위에서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여 이슬람교에서는 매우 신성시하는 곳이다. 이슬람 세계의 건축 사상 역작으로 꼽히는 오마르 사원은 이 바위를 기념하고 보존한다는 취지로 691년 우마이야 왕조 제5대 칼리프 압둘 말리크에 의해 건설됐다. 정팔각형의 기하학적 구조로 설계된 벽에는 화려한 모자이크 창이 있고, 코란의 기도문과 알라 세계의 조화를 상징한 무늬들이 사원 안팎을 장식하고 있다.

평화의 도시

올리브산 정상에 있는 예수 승천 경당은 팔각 모서리에 기둥을 세우고 아치형 벽 위에 돔이 씌워져 있다. 처음에는 예수의 승천을 기념하기 위해 돔을 씌우지 않았으나 이슬람교도의 손에 의해 돔이 씌워졌다고 한다. 이 경당 안에는 예수가 승천할 때 남겨놓고 갔다는 예수의 오른쪽 발자국이 찍힌 바윗돌이 잘 보관돼 있으나 역사적인 신빙성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감람산 기슭에 있는 오솔길을 따라 눈물교회 방향으로 가다 보면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할 당시 지났던 길을 걷게 된다. 순례객들은 이 길을 걷다가 ‘도미누스 플레빗 소성당(눈물교회)’을 만난다. 이 교회는 예수가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곳에 세워진 것으로 내부의 철로 된 창문이 인상적이다. 밑으로 더 내려가면 겟세마네 동산이 있는데 과거 예수가 죽음의 공포와 불안 속에 고뇌하며 온갖 정성을 다해 기도하던 곳으로, 결국 여기서 제자인 유다의 배신으로 로마 군인들에게 체포된다. 오늘날 이곳에는 만국교회가 세워져 있다.

베드로 회개 기념교회는 시온산 남동쪽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예수가 잡혀 대사제의 관저로 끌려갔을 때, 베드로는 예수를 뒤따르다가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다. 세 번째 부인했을 때 닭이 울었고, 예수가 몸을 돌려 베드로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제서야 베드로는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모른다고 할 것이다”라고 한 주님의 말씀이 떠올라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 베드로 회개 기념성당은 대사제 가야파의 집터라고 추측되는 곳에 세워져 있다.

골고다 언덕은 로마시대에는 사형터였으나, 예수 처형 후 기독교의 중요 성지가 됐다. 이 언덕 위에 세워진 유명한‘주의 무덤교회(성묘교회)’는 순례객들이 꼭 방문하는 곳이다. 이 교회 내부에는 예수가 사후 3일간 머물렀다가 부활한 성스러운 유적지 등 의미 깊은 곳이 많다.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십자가의 길)는 예루살렘 성지순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예수가 빌라도 총독에게 사형 선고를 받은 곳인 사자성문(Lion`′s Gate)에서 시작되는 이 길은 예수가 십자가를 메고 처형장인 골고다 언덕으로 가는 길이다. 순례객들은 예수가 겪은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면서 옛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주의 무덤 교회(성묘교회)’로 향한다.

만국교회 내부. 예수가 기도를 드렸다는 바위가 모셔져 있다.

‘스테반 성문’은 예루살렘의 동쪽 성문이다. 성문 양쪽에 사자상을 놓았다고 해서 사자성문이라고 불렀으나 예루살렘 최초의 순교자인 스테반이 이 문 앞에서 돌로 맞아 죽었다고 하여 스테반 성문이라고도 부른다. 다마스커스 성문은 예루살렘 북쪽 성벽에 있으며 로마시대에는 예루살렘의 중심 성문이었다. 예루살렘이 공격당할 때마다 첫 번째 목표가 되었기 때문에 침략자들에게 자주 유린당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스라엘 사람은 대부분 백인이지만 피부색이 검은 흑인도 일부 섞여 있다. 이들은 예멘이나 에티오피아 같은 아프리카에서 이주해 온 유대인이다.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은 과거 많은 속박과 고통을 당하며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았기 때문에 이처럼 다양한 피부색을 띠고 있다. 이스라엘의 두뇌와 교육은 세계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대목이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인물이 허다하지만 이스라엘의 우수한 두뇌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말할 것도 없이 아인슈타인이 꼽힌다. 유대계 미국인으로 뛰어난 과학자였던 그는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으며 미국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 일조했다.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가장 성스럽게 생각하는 통곡의 벽은 유대인에게 마음의 고향이요, 성지 중의 성지인 곳이다. 조상들의 애환이 깃들어 있어 이곳에 서면 유대인들은 각별한 애착과 감동을 느끼게 된다. 기쁠 때나 슬플 때 유대인들은 신분의 높고 낮음, 연령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누구나 이곳을 찾는다. 벽에 머리를 대고 기도서를 읽으면서 때로는 눈물까지 흘리며 열심히 기도드린다.

예루살렘을 방문하기 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로는 이스라엘관광청(www.israel.co.kr), 이스라엘관광청 서울사무소(seoul.mfa.gov.il), 이스라엘관광/오락 사이트(www.infotour.co.il) 등이 있다.

1 베드로 회개 기념교회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

2 예수가 처형당한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성묘교회

3 올리브산에 있는 예수 승천 경당

4 로마시대 포장석이 깔려 있는 십자가의 길


예수님의 흔적을 따라,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싶어서 ^^ 이스라엘 여행을 갑니다.
7월 4일 토요일에 가서 12일 일요일에 돌아옵니다.
요즘은 대한항공에서 이스라엘 텔아비브 직항이 있더군요. 참 좋은 세상이에요~ 

그동안 포스팅이 없더라도 궁금해하지 마시고~ ^^ 안전하게 잘 다녀올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친한 친구들과 함께 가는 것이라서 별로 걱정은 안 합니다. 현지에 계시는 선교사님을 통해 방문하는 것이라서 큰 어려움은 없을 것 같고요.

참으로 설레는 여행이네요. ^^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좀 더 담아서 돌아오겠습니다. 샬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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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니스(Eunice)


출처:greenleafimagery.blogspot.com/

언니, 지영이에요. 요즘 가족들로부터 받는 상처 때문에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요.

아빠는 은퇴하시고 새 일을 찾아다니시는 것 같은데, 집에 계실 때에도 저랑은 눈도 안 마주치시구요. 저도 뭐, 아빠랑 제대로 대화해 본 적이 없어서 둘이 있으면 어색하기만 하죠.

엄마는 돈 버는 것 너무 힘드시다며, 빨리 눈 낮춰서 취업하라고 하시는데 취업이 어디 제 마음대로 되는건가요? 저도 답답하다구요.

언니는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나한테 다 풀어요. 툭 하면 짜증에, 버럭버럭 화를 내고ㅜㅜ 정말 열받아서 저도 더이상 못 참겠어요. 한번만 더 별 것 아닌 걸로 화내면 저도 확! 달려들지도 모르겠어요.

남동생은 이런 집 분위기가 너무 싫다고, 자긴 고3인데 제대로 대접받지도 못한다고 한탄하면서 어린 것이 살 맛 안난다는 소리나 해대고....

제가 무슨 동네북인가요? 저도 나름대로 힘들다구요. 힘든 몸을 이끌고 집에 가도 행복하지 않아요. 그냥 밖에서 돌아다니는 것이 더 마음 편하다는 생각까지 든다니까요. 어떻게 해야하죠? 즐거운 우리집은 노래에서나 나오는 걸까요?


지영아, 안녕~
아니, 너의 상태를 보니 안녕하지는 않구나.... ㅡㅡa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보듬어주고 새 힘을 주어야 할 가정이 오히려 네게 짐처럼 여겨져서 네가 많이 힘들겠다.
밖에서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집에 가면, 집이라는 이유만으로 마음이 편안해지는데 네가 말한 것 같이 그런 상황 속에서는 너도 힘을 내기가 힘들지....


당연한거야. 네가 이상한 것이 아니란다.
옛날처럼 단칸방에 살아도 서로 살을 맞대며
사랑하고 위로하는 모습보다는,
물질적으로는 훨씬 풍족해져서
기본적인 생활을 하는데는 아무 어려움이 없지만
사랑이 메마른 가정의 모습을 많이 보게 되네.

한국 사회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가치를 추구하다보니, 눈에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인 것 같아.



언니도 비슷한 경우를 겪은 적이 있어.
아빠가 은퇴하시고 한동안 무기력하게 지내시는 걸 힘들게 본 적도 있고, 엄마한테 결혼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은 적도 있고, 동생과 의견 충돌이 있어서 심하게 다툰 적도 있고 말이야~ 그럴 땐 사실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고 싶고, 그냥 안 보고 사는 것이 더 낫겠다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

그런데 언젠가부터 내 안에 사랑이 채워지기 시작하니까 그 사랑이 흘러가서 우리 가정을 채우게 되더라. 
가만히 생각해보니 하나님이 주신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인데....내가 왜 미워해야하지...라고 생각하면서
나도 힘든 상황 속에 있지만 우리 가정을 비판하고 부정적으로 보기보다,
내가 먼저 사랑을 표현하고 섬기는 것을 시작했더니 한명 한명 변하기 시작하더라고~ ^^

벌써 몇 년 전 일이네. 은행을 다니다 퇴직하신 아빠에게는 '인생 2막'이라는 책을 사드리고 아빠의 새로운 삶을 응원하는 편지를 써드렸지. 그리고 '아버지학교' 라는 곳에 등록해드리려고 2년을 공들인 끝에 아빠가 그 과정을 수료하게 되셨고 그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엄마에게는 통화할 때마다 '사랑해~ 엄마'라는 말을 의식적으로!  하려고 노력했어. 엄마가 나에게 어떤 짜증을 내시더라도 내 엄마가 아닌 것은 아니잖아? ^^ 그래서 그럴 때 더~ 열심히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표현했더니 엄마가 하는 말이 내게 상처도 안 될뿐더러 나중에는 엄마도 사랑하는 내 딸~ 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하게 되시더라구~
 
동생과는 집안일(설거지, 빨래, 청소 등)을 서로 미루다가 다투게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언젠가부터 그냥 내가 하지뭐 라고 생각하고, 누가 얼만큼 집안일을 나눠서 해야하는건지 이성적으로 따지지 않고 내가 먼저 했더니 이제는 어떨 땐 동생이 먼저 집안일을 한다고 나서더라구. 집안일 때문에 버럭버럭~했던 동생이 예전에 비하면 얼마나 유순해졌는지 몰라~ ^^

이 모든 것이 작은 나의 노력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그 노력을 시작한 나는 알지~ ^^
내가 한 것이 대단히 크고 놀라운 일은 아니야. 그냥 우리 가정이 처한 현실을 한탄하기보다 그 안에서 내가 우리 가정을 회복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일 - 마음을 표현하는 일, 먼저 섬기는 일 - 을 시작했을 뿐이야. 

얼마 전에 친구에게서 들은 멋진 말이 있는데, 
세상에 사랑을 나눠줄 수 있으려면 내 안에 러브탱크를 채워야 한대.
사람에게는 러브탱크 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채워져야 다른 사람을 돌아볼 수 있게 된다고 하더라고~
언니는 예수님을 믿으니까 내 안에 있는 러브탱크 안에 예수님의 사랑이 채워졌고, 그 때 우리 가족을 돌아볼 수 있는 눈이 생긴 것이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이 내 안의 러브탱크를 가득가득 채우고나니,
그 사랑이 가족들 한명 한명에게로 흘러가고,
가족들 안에 있는 러브탱크가 나로부터 흘러간 사랑으로 채워지고 나니까,
그들에게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기게 되어서,
나에게 사랑을 돌려주고, 우리 가족 외의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더 많이 갖게 되는 아름다운 선순환이 일어났지. 

나는 상처많은 가정이 회복되려면 부모님부터 변해야 되는 줄 알았어.
가정의 어려움은 내 손으로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어.
그런데, 나의 러브탱크가 가득 차고나니까 나를 통해서 가정이 변하기 시작하더라. 
시간은 좀 걸렸지만 가족들의 러브탱크가 점점 가득하게 차오르면서,
가정 내에 행복한 기운이 감돌고, 웃음이 떠나지 않고,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돈독해지기 시작했어. 

지영아, 
그렇기 때문에 언니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즐거운 우리집이 되는 것은 너부터, 너의 작은 사랑의 표현에서부터 가능해진다는 것이야.
그 작은 사랑의 표현이 가능해지려면 네 안의 있는 러브탱크를 가득 채워야 하고 말이야~ ^^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찾아떠난 파랑새는 결국 우리 주변에 있었던 것처럼,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것은 가정을 새롭게 살리고 싶은 그 한 사람의 노력으로 충분히 이룰 수 있는 것이라고 난 믿어. 

먼저 네 안의 러브탱크를 채우는 노력을 해보렴.
너를 창조하신 그 분을 생각하며, 좋은 것을 보고, 긍정적인 생각을 품고, 가진 것에 감사하는 연습을 하기 시작하면 러브탱크가 점점 차오를꺼야. 그 러브탱크에 사랑이 차오르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가족을 향한 사랑이 생기고, 네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보이기 시작할꺼야. 

부모님과 언니, 동생에게 가정의 행복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미루지 말고, 
러브탱크를 채워서 사랑을 흘려보내는 것....
가정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너부터 시작해보렴.
작은 너의 순종에서 아름다운 기적이 피어오를꺼야. ^0^ 
 

염시권_The LOVE - family_블랙벨지움 대리석_55×10×30cm_2004
출처 : neolook.net/archives/pages/20070612f


* <지영이에게>는 제가 20대에 들었으면 좋았을 나의 이야기, 경험들을 나누는 코너입니다.
   제 핸드폰에 저장되어있는 여성들의 이름 중 가장 많은 이름이 '지영'이었기 때문에
   대표적인 20대 한국여성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지영이를 꼽았으며, 
   언급되는 사례는 순전히 저의 창작임을 밝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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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니스(Eunice)

지난 주에는 참으로 귀한 삶을 살다가 천국으로 간 두 명의 청년이 제 삶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그 두 분은 예멘에서 의료자원봉사를 하던 중 무장단체에 피랍되어 살해된 엄영선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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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에서 살해된 엄영선씨의 블로그 사진.


말라위에 있는 국제 구호단체 '사랑의 곡식재단'에서 자원봉사를 하다가 말리리아에 걸려 사망한 이윤상 씨 입니다.

 
 
 
 
 
 
 
 
 
 
 
 
▲ 2008년 4월 아프리카 내륙국가인 말라위 루첸자의 교도소에서 자원봉사자 이윤상씨가 재소자들을 돌보고 있다.
이씨는 지난달 29일 말라리아로 숨졌다./아름다운교회
 

두 분 다 저와 비슷한 나이대인 30대 초반이어서 그런지, 그 죽음이 더욱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열정만 앞서는 20대도 아니고, 30대면 자신의 삶의 소명을 찾아 진지한 자세로 나아갈 때이죠.

그렇기에 남들이 보면 안타까운 죽음일지라도,
그 분들이 선택한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그들 스스로 후회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엄영선 씨의 블로그에 이런 글이 있었다고 하지요.
"사람은 자기가 선택한 가치관에 의해 삶의 목적과 태도가 결정된다.
그 목적에 따라 선택한 일들을 후회하지 않음에 감사한다."
라고...

동의합니다.
이렇게든 저렇게든 인간의 삶은 죽음을 향해 달려갑니다.
참 아이러니하죠? ^^ 열심히 사는 것이 곧 열심히 죽는 것이라니....하하하하 ^^;;;;;;

부자이든 가난한 자이든...
이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이든 실패만 하는 것 같은 사람이든...
결국 한 평생, 단 한번뿐인 인생을 사는 것인데,
나의 만족, 나의 기쁨만을 위한 삶을 산다면, 그것이 오히려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 두 분이 한국에서 살았더라면 좀 더 오랜 시간 안락하게 살았을지도 모르지만,
머나먼 땅에 사랑과 치유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사랑의 손길은 전해주지 못했겠지요.

지금은 저들의 삶과 죽음이 그 땅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우리의 눈으로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분명히 그들을 통해 더 많은 생명을 살리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땅의 삶만 보면 허무한 죽음 같지만, 죽음 이후에 천국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귀한 죽음이지요.

이 세상 가운데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썩어지는 그런 삶....
바로 예수님이 살다가신 삶과 가장 닮은 모습이었기에, 하나님이 그들의 삶을 기뻐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죽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의 소식도 듣게 되지요.

자신의 안락을 위한 삶을 포기하고 남을 위해 살다가 죽는 사람과,
주변환경과 삶의 무게에 짓눌려 스스로 삶을 포기하고 죽는 사람....

같은 죽음이지만 참 다른 죽음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하고 죽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저희 이모가 일하시는 케냐의 슬럼가로 초대해드리고 싶네요.

그 곳에서는 에이즈가 걸린 부모님을 둔 탓에, 태어나자마자 에이즈에 걸려 나를 위한 삶이든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이든 선택할 수 있는 여지도 없이 말 그대로 '죽어지는' 아이들이 있거든요.
에이즈에 걸려 태어나지만 잘 먹이고 케어해서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 1만명을 살리는 것이 저희 이모의 평생 사명입니다.  결코 책임감이나 의무감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저희 이모는 기쁨으로 그 일을 18년째 하고 있으시답니다. 

누군가는 그토록 살리고자 하는 생명을....누군가는 그토록 살아내기 힘든 이 세상...
정말 아이러니하지만 조금만 관점을 다르게 하면
''포기하는 인생'이 아니라 '남을 위해 헌신하며, 나도 살아나는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내 가는 길만 비추기보다 누군가의 길을 비춰줄 수 있는 그런 사람, 저도 그런 사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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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니스(Eunice)